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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손꼽아 기다리는 공휴일인데요, 3월에 하루밖에 없는 귀한 공휴일이면서 올 해는 금요일에 걸리는 바람에 금토일 3일의 황금연휴가 성립되어 모두가 꿀 같은 휴가 계획을 세우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저 공휴일이라고 좋아하기보다는 105년 전 오늘 한반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한 번쯤은 돌이켜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던 우리 선조들을 기리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져보시는 게 어떨까요? 영화 <항거>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2019년 2월 27일, 삼일절을 2일 앞두고 개봉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고아성'이 실제 유관순 열사의 외적인 모습과 많이 닮아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이 영화는 삼일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10대 청소년 독립운동가들의 옥 중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저도 학생 때 서대문 형무소에 견학을 가서 감옥 내부의 모습을 보고 우리 독립 투쟁가들이 얼마나 혹독한 고문과 고초를 겪었어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대문 형무소를 탈출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는지 배우면서 가슴이 찢어지고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학생들도 나라를 위해 투쟁하다 그 감옥에 갇혀 생을 마감하는 일도 많았었죠. 한국사람으로서 일제강점기의 역사영화를 보다 보면 항상 스스로에게 드는 질문은 '나라면 나라를 위해 내 한 몸 바쳐 그렇게 싸울 수 있었을까?'였습니다. 영화 <항거>를 보면서도 내내 그런 질문이 들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자유롭게 공휴일을 즐길 수 있는 우리들은 잠시라도 독립투사 분들을 기리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영화 항거 유관순이야기 역사적 배경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데라우치 통감과 대한제국의 이완용은 한일합병조약을 맺습니다. 나라의 통치권이 대한제국이 아닌 일본에게 넘어간 조약입니다. 이 조약으로 우리나라는 35년동안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 조약은 애초부터 불법이며 무효조약이었는데, 그 이유는 내각총리가 아닌 이완용이 승인을 하였으며 을사늑약에서 황제의 승인을 받지 않아 일제통감의 정책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는데, 매국노 8인이 나서서 나라를 팔아먹은 일로,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치욕적인 일이라는 뜻으로 '경술국치'라고 불립니다. 영화 <항거>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로 일본의 통치를 받게된 대한제국 국민들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비폭력 운동, 3.1 운동입니다. 이러한 비폭력 투쟁운동은 일본 도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해였던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의 YMCA 회관에서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2.8 독립선언을 외칩니다. 2.8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한반도 내에서는 이 운동을 계속 이어가고자 독립투쟁가들이 똘똘 뭉쳐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합니다. 이 선언서를 3월 1일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서 낭독하기로 하고, 민족 대표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 학생들이 선언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로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족 대표들은 탑골공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탑골공원에 집결해 있던 학생들이 주도하여 시작된 3.1 운동은 한반도 전역으로 번져나가며 전국에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지게 됩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영화 <항거>의 주인공 '유관순 열사'입니다.

     

    유관순 열사 

    유관순 열사는 1902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으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할 당시 겨우 16살이었습니다. 당시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었던 중학교 3학년 정도의 평범한 여학생이었습니다. 어린 여학생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이화학당에서부터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까지 만세를 외치며 행진합니다. 한 달 후인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 군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부모님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유관순 열사도 현장에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게 됩니다. 이곳에는 친오빠인 유관옥도 투감 되어 있었습니다. 옥 중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만세 시위를 펼치다 1920년 9월 혹독한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줄거리

    영화는 유관순 열사가 비폭력 만세시위 투쟁을 하다 서대문 형무소에 이송되어 오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이곳에서 함께 잡혀 온 시위 동료들과 함께 재판을 받게 되고 그 재판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판사에게 의자를 던져 7년형을 받고 투감 되게 됩니다. 옥 중에서도 유관순은 동료들에게 독립 투쟁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보이며 3월 1일을 기념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더 참혹한 고문을 받게 됩니다. 혹독한 고문에도 변함없는 결의를 통해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그 당시 어리고 젊은 학생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의미

    그도 인간이기에 때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투쟁의지를 굽히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왜 저렇게 까지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 후반부에 같은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에 독방에 쓰러져있던 유관순 열사는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채로 대답합니다. '그럼 누가 합니까?'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은 고통만큼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슬픔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유관순 열사는 끝까지 일본의 무자비한 식민지배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항거'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 땅에서 '한국인'으로 '한국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겠죠.